우리는 하루 종일 누군가와 이야기한다.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카톡을 확인하고, 출근길에 피드를 넘기고, 일하는 내내 메일과 메신저에 답한다. 저녁이 되면 단톡방 알림이 또 쌓인다. 입력창에 무언가를 적어 넣는 행위는 종일 끊이지 않는데, 그 글자들은 거의 전부 밖을 향한다. 상대에게, 동료에게, 모르는 사람들에게.
정작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은 하루에 몇 마디나 될까. 곰곰이 따져보면 거의 없다. 오늘 뭘 먹었는지, 컨디션이 어땠는지, 왜 유난히 짜증이 났는지, 그런 걸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시간은 우리 일과 어디에도 잡혀 있지 않다. 밖과의 대화에는 전용 앱이 수십 개씩 깔려 있는데, 나와의 대화에는 자리가 없다.
비보미는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만든 앱이다.
카카오톡이 남과 대화하는 앱이라면, 비보미는 나와 대화하는 앱
이렇게 말하면 거창하게 들릴까 봐 먼저 짚어두고 싶다. 비보미는 매일 밤 자리에 앉아 일기를 쓰라고 요구하는 앱이 아니다. 그렇게 만들면 사흘이면 멈춘다는 걸 우리도 안다.
비보미에서 나와 대화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. 하나는 아이콘을 한 번 탭하는 것. 커피를 마셨으면 커피 아이콘, 두통이 있으면 두통 아이콘을 누르면 그걸로 한 조각이 기록된다. 다른 하나는 말하듯 한 줄 적는 것. "점심에 라떼 먹고 오후 내내 졸렸다" 정도면 충분하다. 문장을 다듬을 필요도, 형식을 갖출 필요도 없다.
중요한 건 이 조각들이 그 자체로는 별것 아니라는 점이다. 커피 한 잔, 졸린 오후, 짧은 산책. 하루치만 보면 메모 부스러기에 불과하다. 그런데 이게 며칠, 몇 주 쌓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. 흩어져 있던 점들이 어느 순간 선으로 이어지고, '나'라는 사람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. 나는 비가 오는 날 유독 가라앉는 사람이구나. 점심을 무겁게 먹으면 오후를 통째로 날리는구나. 이런 건 누가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다. 내가 남긴 기록만이 말해줄 수 있다.
한 줄 적으면, 나머지는 비보미가 정리한다
말하듯 적은 한 줄은 그냥 텍스트로 묻혀버리기 쉽다. 그래서 비보미는 그 한 줄을 받아서 알아서 칩으로 정리한다. "점심에 라떼 먹고 오후 내내 졸렸다"고 적으면, 라떼이라는 섭취 기록과 졸림이라는 컨디션 기록이 자동으로 분리되어 붙는다. 사용자가 카테고리를 고르거나 태그를 달 필요가 없다.
이게 왜 중요하냐면, 기록의 문턱이 낮아질수록 나와의 대화가 끊기지 않기 때문이다. 정리하는 일까지 사람한테 떠넘기면 결국 귀찮아서 안 하게 된다. 적는 사람은 그냥 떠오른 대로 한 줄 던지고, 그걸 의미 있는 단위로 쪼개고 분류하는 노동은 앱이 가져간다. 그래야 "기록한다"는 행위가 부담이 아니라 가벼운 혼잣말처럼 남는다.
칩으로 정리된 조각들은 그다음부터 스스로 모인다. 한 달이 지나면 내가 커피를 며칠 마셨는지, 어떤 날 컨디션이 좋았는지가 별도의 수고 없이 쌓여 있다. 나는 한 줄을 던졌을 뿐인데, 내 윤곽을 그릴 재료가 차곡차곡 준비되는 셈이다.
밖으로 쏟는 에너지의 1%만, 안으로
우리는 하루에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밖으로 쏟는다. 답장을 고민하고, 표정을 신경 쓰고, 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헤아린다. 그 에너지의 1%만 방향을 안으로 틀어도 충분하다. 비보미가 요구하는 건 딱 그만큼이다. 탭 한 번, 한 줄.
이 1%가 쌓였을 때 생기는 변화는 작지 않다. '그날은 왜 컨디션이 좋았지?'라는 질문에, 더는 인터넷 어딘가에서 들은 일반론으로 답하지 않게 된다. 잠을 7시간 잤고, 점심을 가볍게 먹었고, 오후에 햇빛을 좀 쬐었다, 내 기록이 내 질문에 답한다. 남의 평균이 아니라 나의 데이터다.
자기결정이론 연구가 오래전부터 말해온 게 있다. 밖에서 주어지는 보상이나 통제는 오히려 내 안의 동기를 갉아먹고, 스스로 정한 것만이 지속된다는 것이다1. 비보미가 하루에 한 번 알림으로 채근하고 점수로 등급을 매기는 식이었다면, 그건 또 하나의 외부 압력이 됐을 거다. 그래서 비보미는 잔소리하지 않는다. 적고 싶을 때 한 줄 적고, 보고 싶을 때 내 윤곽을 들여다보는 것, 그 자율성이 며칠짜리 결심을 몇 달짜리 습관으로 바꾼다.
목표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, 내 행동이 곧 루틴이다
대부분의 자기관리 앱은 거꾸로 작동한다. 먼저 목표를 세우게 한다. 하루 만 보, 물 2리터, 명상 10분. 그러고 나서 그 목표에 못 미치면 빨간 표시를 띄우고 연속 기록이 끊겼다고 알려준다. 이상적인 모습을 정해두고 거기에 나를 욱여넣는 방식이다.
비보미는 순서를 뒤집는다.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, 그게 내 루틴이다. 만 보를 걷겠다고 다짐한 게 아니라, 돌아보니 평일엔 사천 보쯤 걷고 주말엔 거의 안 움직였다는 사실. 그게 가짜 목표가 아니라 진짜 나다. 목표는 이 실제 루틴을 바탕으로 조금씩 조율하는 것이지, 허공에서 내려와 나를 심판하는 게 아니다.
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. 이상에서 출발하면 기록은 늘 '얼마나 모자랐는가'를 증명하는 성적표가 된다. 반대로 내 행동에서 출발하면 기록은 ‘나는 어떤 흐름을 가진 사람’이라는 관찰이 된다. 성적표는 보기 싫어서 덮어두게 되지만, 나에 대한 관찰은 들여다볼수록 흥미롭다. 비보미가 노리는 건 후자다. 자책 없이 나를 계속 보게 만드는 것.
비보미가 만들려는 건 정보가 아니라 짧은 순간
요즘 건강 앱들은 데이터를 더 많이 보여주려고 경쟁한다. 심박수, 수면 단계, 혈중 산소, 걸음 수, 스트레스 지수. 화면이 숫자와 그래프로 빽빽하다. 그런데 그 많은 정보가 정작 나를 나와 더 가깝게 만들어줬는지는 의문이다. 대시보드를 한참 들여다봐도 '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'라는 질문에는 좀처럼 답이 안 나온다.
비보미가 만들려는 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다. 하루에 한 번, 나와 다시 연결되는 짧은 순간이다. 자기 전에 아이콘 하나를 탭하면서, 출근길에 한 줄을 적으면서, 잠깐 '오늘의 나'에게 안부를 묻는 그 몇 초. 그게 핵심이고 나머지는 거들 뿐이다.
남과의 대화는 평생 끊기지 않을 거다. 카톡도, 메일도, 피드도 사라지지 않는다. 다만 그 사이 어딘가에 나와의 대화도 한 자리 끼워 넣자는 것, 비보미가 제안하는 건 그 정도다. 거창하지 않게, 탭 한 번이나 한 줄로. 그 짧은 조각들이 쌓여 어느 날 문득 내 윤곽을 보여줄 때, 우리는 종일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잠깐 안으로 돌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.
References
- 1.Ryan, R. M., & Deci, E. L. (2000). Self-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, social development, and well-being. American Psychologist. linkV1
These are academic works vivome draws on; they do not replace medical diagnosis or treatment.
메신저가 타인과 대화하는 도구라면, 비보미는 매일 나 자신과 만나는 도구입니다. 밖으로 쏟는 에너지의 1%만 안으로 돌려도 하루는 다르게 읽힙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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